[칼럼] 변화를 거부하는 대학에 미래는 없다

이정화 기자 / 2026-06-11 11:10:13
▲ 조영빈 , 오토폼엔지니어링코리아 대표이사 / (사)주한외국기업연합회 KOFA 회장

[뉴스서치] 필자는 지난 30년 가까이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장으로 일하며 세계 산업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변화는 단연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다.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문명사적 전환이다. 기업의 업무 방식은 물론이고 교육, 의료, 금융, 제조업 등 사회 전 분야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대학이다.

■ AI는 대학이 생각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수확 가속 법칙'은 기술의 발전이 선형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변화의 속도 자체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과거의 속도로 대비하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뒤처진다. 대학이 5년 전 속도로 커리큘럼을 손질하는 동안, AI는 이미 10배 앞서 달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5년간 전 세계 일자리의 약 23%가 AI로 인해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하며, 기업의 70%가 AI 도구를 설계할 신규 인력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졸업할 4년 후, 그리고 사회에서 10년을 일할 시점인 2035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직업 지형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산업은 이미 미래로 달려가고 있는데, 대학은 제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 모두가 AI, 반도체를 외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AI, 반도체, 로보틱스, 데이터사이언스. 정부 재정 지원이 이 분야에 집중되고, 대학들은 앞다투어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커리큘럼에 AI 과목을 끼워 넣고 있다. 이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AI와 반도체는 분명 미래 산업의 핵심이다.

그러나 여기서 냉정하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전국 200개 대학이 모두 AI 학과를 만들고 비슷한 커리큘럼을 운영한다면, 과연 어느 대학이 살아남을 것인가.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모든 대학에서 비슷한 AI 교육을 받은 졸업생이 쏟아진다면, 차별화는 어디서 오는가?

역설적이게도,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재는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AI는 주어진 데이터 안에서 최적의 답을 찾는다. 그러나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없던 질문을 만들어내고, 실패를 감수하며 전례 없는 시도를 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다. 단기적으로는 AI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 ‘창의성, 비판적 사고, 공감 능력, 융합적 상상력’을 기르는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첫째,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AI는 정해진 답을 찾는 데 탁월하다. 반대로 인간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 즉 창의성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정답 없는 문제를 다루는 수업을 늘려야 한다. '왜 이것이 문제인가', '더 나은 질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과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전공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 프로젝트도 의무화해야 한다. 공학과 예술, 경영과 심리학, 의학과 데이터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의적 발상이 싹튼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단일 전공자가 아닌 다양한 배경의 협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대학의 학점 중심 문화는 학생들이 안전한 선택만 하도록 유도한다. 실패를 허용하고, 실험적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일부 미국 대학에서는 아예 '실패 수업'을 개설해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분석하게 한다. AI와 협업하는 창작 수업도 빼놓을 수 없다. 글쓰기, 디자인,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창작 과정에서 AI와 함께 작업하며 'AI가 결코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창의성 교육의 핵심이다.

둘째, 교수의 강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의 역할은 이미 AI가 대체하고 있다. 웬만한 개념 설명은 AI나 유튜브가 더 친절하고 빠르게 해준다. 교수의 진짜 역할은 지식을 읊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강의실은 교수가 말하고 학생이 받아 적는 공간에서, 학생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업 전문가와의 공동 강의, 실제 기업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 AI 도구를 수업 안에서 직접 활용하는 실습 등이 그 출발점이다. 교수 스스로도 산업 현장과 지속적으로 접점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암기와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 중심의 평가는 AI 시대에 맞지 않는다. 기업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해진 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불확실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학기말 시험 한 번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팀 프로젝트 결과물, 현장 문제 해결 과정, 포트폴리오 등 실질적 역량을 보여주는 평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 AI 시대일수록, AI가 못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30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모든 기업이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 거기서 이기는 것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기업이 결국 살아남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AI 학과를 만들고 비슷한 커리큘럼을 운영할 때, 차별화는 오히려 반대편에 있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전례 없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분야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인재, 그것이 10년 후 AI가 대체할 수 없는 마지막 인간의 영역이다. 학생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현실, AI가 교육의 지형을 바꾸는 현실, 최우수 인재가 이공계를 외면하는 현실 앞에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위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동력 삼아 스스로를 혁신하는 것이다. 기술을 가르치되 기술 너머를 보게 하라. 답을 가르치되 질문을 만드는 힘을 길러라. 교수 사회, 보직자, 대학 본부 모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미래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때다. 변화를 거부하는 대학에 미래는 없다.

[조영빈 대표 소개]
조영빈 대표는 영국 에섹스대학교 경제학 학사와 경희대학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다쏘시스템코리아 재무팀 매니저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오토폼엔지니어링코리아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사)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회장 및 (사)주한글로벌기업대표이사협회(GCEO) 회장을 맡아 국내외 기업 경영 및 산업혁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뉴스써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